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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섬나라 오키나와 기행
글 / 선우 유진숙
 
강동환기자 기사입력  2020/04/19 [16:16]

직장 입사 후 2년 반 만에 해외여행 휴가를 받았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머리가 폭발 직전이었는데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아는 언니들과 여행지를 수소문했는데, 그리 멀지 않으면서 비용이 싸게 나온 상품이 하나 있었다. 대만과 일본 사이에 있는 독립왕국(유구국)이었다가 100여 년 전에 일본에 합병되었다는 오키나와였다. 위안부 문제로 시작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자칫 매국노 소리를 들을까 봐 조심스러웠으나, 이런 때일수록 두 나라 간 친선의 가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신청했다.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져 일행이 20여 명이나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늦게 비행기를 타니 2시간 만에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에 도착했다. 대기 중인 버스에 몸을 싣고 숙소인 노보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첫날 저녁 식사는 자유식이었다. 언니들과 함께 호텔을 나와 식당 거리로 갔다. 오키나와 현지인들을 만나고 토속음식을 맛보고 싶었다. 이곳 원주민은 중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이 많다는데, 필리핀이나 남중국 사람들처럼 피부가 그을린 듯 검고 여자들은 하나같이 박색이었다. 일본의 지배를 받은 지 오래되어 상점 간판이나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일본어였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잔술집같이 생긴 식당이었다. 주문하는 방식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한참 서로 눈치를 보며 헤맸다. 우리처럼 식사 메뉴 하나를 선택하면 알아서 갖다주는 게 아니고, 양식처럼 요리와 술을 일일이 주문해야만 했다. 오키나와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쿠르쿤 생선 튀김요리는 물론, 찬푸루 소면국수, 고야 무침 등 손에  집히는 대로 이것저것 주문했다. 그중 생선튀김은 먹을 만했으나 고야 무침은 맛이 쓴 여주를 삶아서 무친 것이라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푸짐한 뷔페로 아침을 먹은 후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했다. 1월 중순이라 한국은 한겨울인데 이곳은 포근한 가을 날씨였다. 섬이라 바닷바람이 거세긴 했지만 따스하고 청명한 날씨와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인상적이었다.  

 

 

 

 

머나먼 동쪽바다 저편에 있다는 이상향 '니라이카나이'를 동경하여 지었다는 꼬부라진 다리를 지나 북쪽으로 버스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코발트 빛 산호초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섬 곳곳에 유구 왕국의 신화와 이국의 정취가 물씬 묻어났다. 

 

 

오키나와는 제주도보다 조금 더 큰 섬으로, 이사부 정벌 후의 우산국 주민들과 제주도에서 패한 삼별초 무리가 이곳으로 도피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이 죽지 않고 이곳에 왔고 홍길동의 부인이 이곳의 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으며, 이 때문에 전남 장성군과 자매결연까지 맺었다고 한다. 이곳은 지리적  위치가 동아시아의 중심에 있어 중개무역으로 번성했던 섬나라였다. 

 

 

1975년 국제 해양박람회가 열린 오키나와 해양기념공원을 둘러보았는데,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일본인들의 솜씨를 이어받아 아기자기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을 쓴 모습을 보았다.

 

 

공원 안에는 돌고래와 범고래 쇼를 하는 곳이 있었는데, 가이드가 시간에 맞춰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고래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사람의 행동과 손짓에 따라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르고 공중제비를 도는데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어서, 일본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수족관이라는 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을 관람했다. 추라우미는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이란다. 우리나라에도 부산 해운대와 서울 63빌딩에 수족관이 있지만, 이곳 추라우미 수족관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바로 세계 최초로 번식에 성공한 고래상어들이다. 초대형 수조 안을 거대한 고래상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는데, 마치 항공모함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 외에도 쥐가오리, 황다랑어, 바다거북이 등 수많은 어종이 있었지만 압권은 고래상어였다.

 

 

 

 

 

다음은 오키나와 중부 서해안에 위치한 국립 자연공원 '만좌모'를 둘러보았다. 18세기 유구왕 쇼케이가 '만인이 앉아도 족한 벌판'이라고 감탄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 모를 남국의 식물들이 거센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짙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해안가 절벽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  

 

 

 

 

 

 

다시 버스를 달려 오키나와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이색 관광지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인근의 가데나 공군기지는 아시아 최대의 미 공군기지. 아메리칸 빌리지에 들어서면 미국에 온 느낌이 든다. 원래 미군부대 영내에 있었던 것인데, 미국이 반환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어느새 밥때가 되었는지 배가 출출하다. 이번에는 일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처럼 음식이 푸짐하지가 않고 한 개씩 주문한 것만 나온다. 손님이 바글바글하여 얼른 먹고 일어서야만 했다. 

 

 

마지막 관광이 시작되는 날. 역시 호텔에서 조식을 마치고 유구 왕국 시절 왕의 거성인 슈리성으로 갔다. 우리가 묵던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처럼 둥근 것이 아니라 남북으로 기다랗게 생겨서 차를 조금 달리면 바다가 보였다. 

 

 

좁은 섬이라 절벽과 해안의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여 성을 쌓았다. 전각은 지붕도 기둥도 중국처럼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해 놓았다. 불행히도 최근에 원인 모를 화재를  당해 제일 중요한 정전이 타버려서 지금 주민들이 재건위원회를 만들고 헌금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불탄 성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불타기 전에는 동화 속의 성처럼 작고 아름다웠을 것 같았다. 과거 오키나와 전쟁 때  파괴되었으나 근래 복원하여 성 입구와 성안 곳곳에는 당시 복장을 한 예쁜 아가씨와 늙은 원주민이 엄숙한 자세로 관광객을 맞는다. 

 

 

 

 

 

슈리성 아래에는 인공 연못이 있는데, 연못 중앙에 사당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 한 채 있다. 이곳은 16세기 초 조선 정부가 하사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라고 한다. 안타깝게도 외세의 침입으로 책은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돌계단 오른쪽으로 성터가 보이는데,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미군의 폭격을 당해 모두 소실되고 주춧돌 3개만 남았다. 2000년에는 슈리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매년 약 28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끝으로, 나하시 인근에 있는 평화공원을 둘러보았다. 평화공원은 1945년 일본과 미군과의 처절한 전쟁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었다. 당시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하여 이를 점령하였고 이 과정에서 불과 석 달 만에 20여만 명이 전사하거나 집단 자살하였다 한다. 당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온 한국인이 1만 명이란 설이 있다. 

 

 

 

 

 

머나먼 섬에 끌려와 남의 전쟁에 휘말려 무참히 희생된 영혼들이 거기에 잠들어 있었다. 갈길 잃은 수많은 혼령의 방황인지 몹시 바람이 불었고, 가난하고 힘없어 잃어버린 나라의 설움을 부여안고 죽어간 조상들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2박 3일 간의 여행일정이 후딱 지나갔다. 짧은 기간이지만 나라 없는 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의 언어가 있고 지켜야 할 나라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글 / 선우 유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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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19 [16:16]  최종편집: ⓒ 대한네트워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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