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환기자 기사입력  2020/12/29 [20:38]
삽량주와 박제상 이야기
양산국학원 박경례 원장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박혁거세에서 비롯된 박씨왕족이 신라초기 국가선도의 주역이었고 박제상은 박혁거세왕의 9세손, 영해박씨로 분파한 파사왕계 5세손이며, 화백을 주관했던 아도갈문왕(참시선인)이 할아버지, 물품파진찬(물계자)이 아버지이다.

 

 

 

신라9대왕부터 석씨왕실이 시작되면서 박씨왕족의 정치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박씨왕족의 국가보위에 대한 당위적 책임의식이 관행이 되어 물품파진찬은 대 가야 요새지인 삽량주로 파견 되었다.

 

 

 

삽량주(현.양산)로 옮겨간 물품파진찬(물계자, 박제상의 부)은 군사.행정 책임관으로 지방관 이상의 독자세력으로 정치적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독자적 군사외교권을 지닌 물품은 이웃한 가야나 백제와의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대체로 싸우기 보다는 선도의 원론에 의한 외교담판을 통해 화친을 이끌어내었다.

 

 

 

가야에 대한 화친 이후 가야연맹체 내에서 포상팔국이 난을 일으키자 가야측의 요청으로 신라는 군대를 파견하는데, 신라군 중에도 물품의 삽량주군이 가장 큰 전공을 세웠다.

 

 

 

정치적 강경파였던 석씨왕족은 박씨왕족의 핵심인물인 물품을 견제, 논공행상에서 배제하였고 물품은 전체의 조화와 화합을 위하여 거문고 하나 들고 입산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불교가 들어오기전까지 고조선의 선도는 나라의 주된 사상으로 기능하였고 화백을 주관한 갈문왕(성직)의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박제상은 내물왕 7년(362) 9월 삽량주 수두리(효충동)에서 출생하였다.학업과 출사를 위해 왕경인 동경의 치술령 아래(울주군 두동면)로 옮겨, 후에 왕이 되는 실성의 딸과 혼인하였고 딸 셋과 아들 백결선생을 낳았다. 

 

 

 

박제상은 내물 42년(397) 36세의 나이로 삽량주간으로 부임하였으나 고구려 개입으로 내물왕이 제거되고 실성왕이 즉위하자 대고구려 종속 노선에 반발, 삽량주간에서 물러나  실성왕 내내 삽량주에 은거하였고 이때 징심록을 편찬하였다.

 

 

 

눌지반정으로 눌지왕(417~458)이 즉위하자 일차적으로 추진된 정책이 '왕제귀환'이다.

고구려에 간 박제상은 장수왕을 설득하여 복호를 구하였고, 왜로 가서는 왜왕을 속이고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혼자 남아 발바닥 껍질 벗겨져 갈대밭을 걷고 뜨거운 무쇠위에 올라가 고초를 겪었으나 끝내 회유되지 않았고 대마도에서 화형 되었다.

 

 

 

박제상은 인생 중.후반기를 대부분 삽량주에서 보냈고 왕실도서관에서 열람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징심헌에서 징심록을 편찬하였다. (징심헌의 위치는 현.양산초교 전방)

징심록은 내용 면에서도 신라 선도의 요체를 담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5지 중에 제1지에 부도지가 실려 있는데 그 첫머리인 '마고신화'에는 중국계 사상과 명백히 구분되는 한국 고유의 존재론 및 역사론의 원형을 오롯이 간직, 한국선도의 옛형태로 크게 주목된다.

 

 

 

박제상은 고조선과 선도 전통에대한 명확한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에 입각하여 왕제귀환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게 한다 주로 충절의 관점에서 만고충신으로 인식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고조선이래의 선도이념(부도론)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박씨왕족 파사왕계 출신의 관인 박제상이 만년 삽량주 은거 생활의 중심은 징심헌으로 여기에서 집안서적과 왕실 장서들을 망라한 방대한 선도서 징심록이 편찬되었다. 징심록은 영해박씨 문중으로 전승되는데, 광복 이후의 혼란 속에서 분실되었다가 1953년 박재익에 의해 '요정징심헌연의'의 형태로 부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의는 징심록의 부분 복원본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징심록15지 중의 제1지로 한국선도의 존재론 및 역사인식의 요체를 담고 있는 부도지, 또 조선초의 문인 김시습이 쓴 징심록해제서 징심록추기가 실려 있어 징심록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

 

 

 

특히 부도지에는 한국선도의 존재론과 역사인식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어 이를 통해 징심록의 선도사상을 가늠해볼 수있고 특히, 천부조화론은 한국선도의 수행적 실천적 교훈까지 정확하게 제시한 논의로 주목된다.

 

 

 

어느 분이 그래요.

 양산에 답사를 오는 팀이 있어서 박제상유적지를 추천했는데, 당일 날 전화가 와서 주소가 검색되지 않는다고... 그마저도 겨우 찾아갔지만 해설사도 없고 문도 잠겨있어서 10분 만에 돌아 나왔다고 다른 분들께 추천하지 말라고 .. 추천한 본인이 민망하고 미안했다고 합니다.

 

 

 

울산 치술령 아래는 등산코스도 잘 되어있고 기념관도 멋지게 되어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데, 박제상이 태어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업적을 남긴 양산은요... 분발해야겠습니다.

 

 

높은 문화의 힘과 박제상의 기상이 용솟음치는 양산 문화의 부활을 꿈꿉니다.

 

 

 

 

 

 

 

 

 

 

 

 

 

 

 

 

 

 

 

 

 

 

 

양산국학원 박경례 원장

 

 

 

 

 

출처 : 영해박씨종친회 카페

(참고자료: 전.양산 문화원장이셨던 정영주원장님의 따님이신 정경희교수님 논문에서 요약 발췌하였습니다 )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한네트워크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배너
많이 뉴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