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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우리를 찾아온 지 벌써 35년"
[단독인터뷰]윤수일, "나는 다문화가족 1세대"…콘서트 때마다 다문화가족 초청
 
조해진 기자 기사입력  2012/06/28 [18:21]
   
▲ 데뷔 35주년을 맞은 가수 윤수일.
 

‘별 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80년대의 아파트 붐이 일었던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누구나 흥얼거리게 만드는 흥겨운 멜로디.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 ‘아파트’의 첫 소절이다.
20대인 기자도 어린 시절 노래방에서 부모님이 부르는 걸 듣고 신이나 따라부르곤 했던 노래를 작사·작곡한 가수 ‘윤수일’을 직접 만났다.
트로트와 록을 합친 ‘록뽕(록트로트)’의 창시자이자 국내에서 최초로 ‘밴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수많은 명곡들을 만든 가수 윤수일. 올해로 벌써 데뷔 35주년을 맞이한 그와 함께 방송국 앞 카페에서 그 동안의 감회와 그의 음악,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소탈한 이야기를 나눴다.
중절모에 옅은 갈색의 선그라스를 낀 중년의 신사는 냉커피 한 잔 옆에 펜과 메모지를 두고 기자의 질문에 집중했다. 먼저 데뷔 35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물었다.
“1977년 데뷔를 한 이후 35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23개의 앨범을 발표했죠. 35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내가 발표한 노래를 많은 이들이 사랑해줬다는 의미에요.”
윤수일의 최고 히트곡인 ‘아파트’와 데뷔곡 ‘사랑만은 않겠어요’, 그리고 그가 음악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든 ‘환상의 섬’과 ‘아름다워’ ‘제2의 고향’ 등을 비롯해 200곡이 넘는 노래는 시대가 지나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윤수일은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는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내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방송국에 요청하고 공연에 같이 참여하며 신곡을 발표하면 제일 먼저 관심을 갖는 팬들이 있어요. 이들에게는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하죠.”
‘윤수일’이라는 이름이 잘 알려졌기 때문에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홀로 데뷔를 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애당초 그는 당시 ‘그룹사운드’, ‘000과 xxx'로 불리던 ‘밴드’에 음악적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50이 넘은 나이가 된 현재에도 ‘윤수일 밴드’로 콘서트와 앨범작업 등 각종 음악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하고 있는 윤수일에게 ‘음악’과 ‘밴드’는 무슨 의미일까.
“제 음악의 시작은 ‘밴드’이기 때문에 밴드를 내팽겨두고 혼자한다는 것은 내 음악에 대한 의미가 없어지는 거에요. 초반에는 밴드 활동을 여러 장비들로 인해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할 수록 이제 ‘밴드’도 하나의 문화로 정착하고 있죠. 인천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발’ 같은 곳에서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지요. 또 성공하고 있는 록 밴드들도 많고.”
자신의 음악 뿌리인 ‘밴드’를 강조하던 신사는 요즘 한류 열풍에 빗대어 음악에서 ‘연주’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답변을 이어갔다.
“지금 전체적인 음악 방향이 한류 바람이 불면서 댄스와 아이돌 음악 위주로 흐르고 있다"며 "걸그룹 보이그룹들이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요계 한 사람의 선배로써 편중된 상태로 우리나라 가요가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연주도 음악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에 하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한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그런 음악적 소양을 키우는 역할을 나같은 사람이 해야한다는 생각이에요. 앞으로 음반을 몇 개나 더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적인 밸런스를 맞추며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할 겁니다.”
한류는 축하받고 계속 지속되야할 문화지만 너무 일률적인 음악에 대한 대선배의 우려였다. 또 음악의 요소를 이루는 연주와 노래를 모두 사랑하는 윤수일의 마음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문득 그가 요즘 어떤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탑 밴드에 나왔던 ‘장미여관’과 같은 밴드들을 유심히 보고 있어요. 또 크라잉 넛, 노브레인, 윤도현 밴드 등도 좋아하죠. 지금은 밴드 문화가 나름대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뿌듯한 미소를 지은 윤수일의 후배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이들 외에도 아이돌 노래도 많이 들어요. 알리 노래도 듣고 빅뱅의 G드래곤이 만든 노래도 듣고. 요즘 후배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곡의 아이디어도 받곤 하죠.”
그는 “요즘은 (음악이) 어떤 틀에 제약을 받지 않아요. 자유롭죠.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전통적인 것을 중시하다보니 틀이 있는데 요즘 친구들은 과감하게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가고. 내가 쓰지 않는 것들을 쓰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이런 점들을 이론적으로도 연구를 해볼까? 하며 연구도 해요”라며 음악을 즐기고 연구하는 진정한 ‘싱어송라이터’로써의 면모도 드러냈다.
한편 얼마 전 윤수일은 ‘불후의 명곡2’에서 ‘전설’의 자리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후배들의 무대를 지켜봤다. 불후의 명곡2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윤수일 편에서 임태경이 ‘아파트’를 뮤지컬 형식으로 부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한 소회도 밝혔다.
“요즘 후배들은 가창력이 참 좋아요. 불후의 명곡에 나온 알리, 에일리, 임태경 이런 친구들은 대단한 가창력으로 내 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키더라고요. 그 때 나도 흥분해서 칭찬에 칭찬을 했죠. 뮤지컬 형식으로 편곡한 임태경의 ‘아파트’ 무대는 참 흡족했어요.”
후배들의 무대가 흥겹고 즐거웠다는 윤수일은 방송 이후 반응도 좋았다며 흐뭇해했다.
“방송에서 후배들이 내 노래들을 부름으로써 인터넷에 화제가 되더군요. ‘윤수일 노래가 이렇게 좋았었나?’라며 대중들이 반응하더라구요. 정말 좋았어요. ‘아름다워’나 ‘제2의 고향’과 같은 경우에는 코드 등을 너무 어렵게 써서 너무 앞서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물론 모두 골든컵들을 받은 곡이지만 그 당시에는 생경스러운 느낌을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더군요.”
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변화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 본 느낌을 받았다.
다음 질문. 첫 발표될 때부터 대박을 치고 국민 응원가로 자리잡은 뒤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을까?
“작곡하는 사람은 주변 환경이 참 중요한데 80년대 초에는 ‘아파트’가 곧 우리나라의 화두였죠. 데뷔를 하고 나서 외국 공연 투어를 다녔어요. 그 때 느낀 건 ‘외국에는 참 아파트들이 예쁘다’라는 거였죠. 외국의 아파트들은 숲 속, 산 속, 강변에 예쁘게 지어져 있었으니까요. 이런 아파트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렇게 예쁜 곳에 아파트가 지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그는 가요 '아파트'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또 실제로 내가 서울에 올라와 하숙을 하던 곳도 아파트였고요. 남산 밑에 있는 재개발에 들어가야할 것 같은 아파트 있죠? 바로 거기에서 데뷔곡인 ‘사랑만은 않겠어요’도 탄생했어요. 시대 상황도 그렇고 ‘내가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라는 곡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거죠.”
당시 상황이 초가집을 짓고 살던 시대라면 초가집 러브스토리가 담긴 곡이 나오지 않았을까? 어떤 상황이든 윤수일은 시대 상황이 담긴 음악을 했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그는 또 “삭막한 콘크리트 내용만 있다면 재미가 없으니까 러브스토리를 넣었죠. 그 러브스토리는 실제 내 친구가 아파트에 살던 소녀와 사귀면서 벌어졌던 일화를 가사로 만든 거에요. 그 친구는 결국 헤어졌었거든요”라며 ‘아파트’ 가사에 얽힌 이야기를 덧붙였다.
신나는 리듬에 비해 ‘아파트’의 노래 가사에는 슬픔이 비춰지는 이유는 친구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이었다. 안타깝지만 그 사연이 윤수일의 노래로 재탄생하면서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 좋은 노래가 있게 해준 친구분께 기자는 잠시 감사의 인사를 전해본다.
그럼 35년이란 오랜 시간 변치 않고 자신이 직접 쓴 곡과 가사로 활발히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윤수일은 그 어떤 질문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재밌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답했다.
“살면서 스포츠도 많이 해보고 낚시, 여행 등등 여러 가지를 많이 해봤지만 난 음악을 만드는 일이 가장 즐거워요.” 한 치의 의심도 할 수 없을만큼 진솔한 마음이 전해졌다.
“음악 만드는 친구들과 같이 연습실에서 연주하고 아이디어를 의논하고 창출하는 과정 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더군요. 내가 ‘아파트와 관련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것을 모두가 듣고 부른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겁습니까. 그 과정들이 너무 즐거워서 지금까지 꾸준히 하는 거에요.”
삶도 일도 즐기면서 사는 그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또한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또 밴드 특성상 멤버가 중간에 교체되기도 하는데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와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도 즐겁고. 벌써 다음 24집 앨범에 들어갈 곡들도 다 만들어 놨어요.” 나이가 무색하게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진정성있는 모습에 기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수’ 윤수일.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에 의해 태어난 혼혈아로 어린 시절 힘겹게 살아왔다.
다문화 1세대라고 봐도 무방한 그는 “한국전쟁의 비극이 휩쓸고 간 즈음 태어난 그는 남다른 외모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죠. 그렇게 이방인처럼 겉돌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 어머니의 라디오에서 나오던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듣게 되면서 ‘음악’에 마음을 빼앗겼죠. 이후로 몰래 라디오 심야방송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어머니가 주무실 때 몰래 듣곤 했어요”라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초등학교 땐 참 힘들었어요. 그러나 중·고교 시절은 한 동네에서 함께 자라온 친구들이 바람막이가 되주기도 했고 암울한 환경에서 성장했던 것과 달리 노래와 유머로 오락부장을 전담했죠. 기타를 들면 내가 주인공이 됐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윤수일이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간 소풍의 노래자랑에서 기타를 치며 故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부른 것이 앵콜을 부를 만큼 호응이 높았어요. 앵콜로 이어 부른 팝송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술렁이게 했죠. 그 때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바로 이거야!’”
자기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그는 그 때부터 방황을 멈추고 ‘음악’에 몰두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아무도 모르게 기타연주와 노래 공부들을 하게 됐고 그룹을 결성해 동아리 활동으로 여러 곳에 공연을 다녔다.
이후 ‘골든 그레입스’라는 당시 유명했던 그룹 멤버로 활동하게 됐고 각종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기획사의 스카웃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가수 생활이 35년을 이어오고 있다.
“즐겁게 사는 것 같아 보인다고 내가 애환이 없는 건 아니에요. 고민도 무척 많아요. 하지만 삶에서 생각하는 것을 그 과정들을 즐겁게 즐겨야 하죠”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이 무척 멋졌다.
그는 자신의 아픈 과거가 되풀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에 콘서트에 모범적인 다문화가족을 엄선해 초청하곤 했다. 콘서트를 하면서 ‘다문화 가족’을 초청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콘서트를 2006년부터 매년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그 때마다 공연의 성격이나 의미를 부여해야겠다는 생각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모범 다문화 가족을 초청하고 있지요.” 그는 다문화 가족 앞에 ‘모범’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다문화 시대에 돌입하고 있죠. 이 사람들이 전국에 뿌리를 잘 내려서 한국 국민들과 잘 어우러져서 산다면 국가적인 경쟁력도 생기는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간혹 다문화 가정의 이혼, 폭행, 자살 등 사건들이 발생해 보도되는 걸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까워요. 이런 것들은 국내 문제일 수도 있지만 국제적인 문제로도 비화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문화 1세대로 힘든 시기를 겪은 윤수일은 다문화 사회의 과도기적인 시기에 벌어지는 사건들로 인해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다문화 가족들까지도 오해를 사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로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음을 밝혔다.
“지역에 콘서트를 가면 그 지역의 모범적인 다문화 가족들을 초청해서 얘기를 나누곤 합니다. 나는 다문화 1세대니까. 내가 살아오면서 어린시절에 받았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이야기 해주죠. 또 전보다 세상이 좋아졌다해도 여러 가지 어려움과 외로움이 있을거에요. ‘Korean dream’과 ‘사랑은 국경을 넘어’와 같은 노래로 그런 애환을 달래고 한국인들과 어우러지는 한마당 축제 분위기를 만들곤 해요. 또 콘서트 수익금 일부를 지자체 다문화 자녀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그는 최근 발족한 (사)국제다문화협회의 공동대표도 맡았다. 프로젝트가 나오면 서로 협의하고 검토해서 활동 방향을 정할 예정이다.
세월이 지나도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들을 남긴 지난 35년. 윤수일은 자신의 밴드와 함께 꾸준히 콘서트를 열고 팬들과 음악을 공유해왔다.
특히 올해는 데뷔 35주년을 맞이한 콘서트이기 때문에 음향, 조명, 영상 등 여러 가지 시스템 등에도 더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윤수일의 일대기 및 추억의 데뷔시절 명장면들을 모은 영상도 와이드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준비도 철저히 했다. 또 5월 6일에 진행했던 서울 콘서트는 SBS에서 특집방송으로 방영될 예정이어서 TV로도 윤수일의 콘서트를 감상할 수 있다.
지난 5월 5, 6일 올림픽홀에서 성황리에 데뷔 35주년 콘서트 첫 회를 마친 윤수일은 이후 강릉, 인천, 대전, 울산, 제주시 등 10개 도시 투어 콘서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연말에는 미주지역 및 서울 앵콜 공연도 계획돼있다.
마지막까지 윤수일은 “에너지가 남아있는 한 모든 국민들이 애창할 수 있는 명곡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창작하는 것.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라며 ‘음악’에 대한 진한 사랑을 표현했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그의 노래가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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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6/28 [18:21]  최종편집: ⓒ 대한네트워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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